인삼관련자료실

뒤로가기
제목

중국의 인삼재배-2

작성자 도우미(ip:)

작성일 2012-10-19

조회 1534

평점 0점  

추천 40 추천하기

내용

 

 *수이전

   중국에 있어서 약용식물의 재배 기원은 상당히 옛날부터일 것이라고 생각되며 문헌이 없어

   고증할 수 없으나 수서『백관지』에는 「고조의 명을 받아 문하성을 두어 상도국을 다스린다」라고

   한 다음에 약원사 이인의 장원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고,또 동서경적지서목중에 『종신지법』등이

   있음을 보아 예로부터 약용식품의 재배는 관사 공히 행하여졌다고 보아지나 그 중 인삼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업성 신뢰성이 결여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

  당대에 이르러서는 의약분야도 상당히 진보되었고 장안에는 약원을 설치하였고 이 약원의 재배약초 중에

  인삼이 있는가는 분명치 않다. 사적재배의 문헌으로서는 단하나 육귀몽의 시중에 「삼아소종근인이」이란

  문구가 있어 인삼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은 고구려 아니면 산서성 태행산백에서 자연

  생산의 뿌리를 옮겨 심은 것이 아닌가 인정된다.

 

*송

  송대에 이르러서는 의약부문에 많은 발전이 있어  본초학에 대한 저술도 상당수엥 달하고 있다. 당대의 시인

  소동파의 시에서 인삼에 대한 방구를 찾아볼 수 있으며 필경 요동지방이나 지방의 인삼을 이식하였던 것이

  아닌가 본다. 또한 송말 때의 시를 음미해 볼 것 같으면 인삼재배에 대하여 비고적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명

  명시대의 인삼내배에 대해서는 이시습의 『본초강목』의 인삼항에서 채종으로부터 파종하는 방법과 시기 등에

  관하여 당시의 수준으로 보아 자새하게 기록되어 있다.

 

*청

  청시대의 인삼재배에 대해서는 진부요의 『비전화경』에서 찾아볼 수있으나 이시습의 『본초강목』의 내용과

  유사하고 왕사정의 『지북우담』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관전의 내정에 인삼을 재식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청대 후기에는 자연생 인삼의 새체를 금하고 관이 직접 개입하여 채취하고 황실이나 국고수입으로 하였다

  당시 길림성내에 관에 종사하는 자 또는 산민등 산림중의 치삼을 발견하였다가 옮겨  심거나 쳐적을 하여 두었다가

  채취하거나 아니면 종자를 따서 방파하였다가 채취하기도 하였느데 이와같은 인삼을 앙삼 이나 앙자삼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한국에 있어서 산양삼과 같은 것이라 생각되며 정원에 식부하였던 것은 가삼에 해당된다.

  길림이나 봉천지방의 인삼재배는 주로 임간에서 하였는데 수백년씩 두고 낙엽 등이 쌓인 곳을 선정하여 심경하고

  높이 30cm, 폭 120 cm정도의 두둑을 20~30간 애지 백간씩하여 인삼을 파종하고 일광의 직사나 우수의 칩수를 막기 위해서

  횡목을 대고 목판이나 나무껍질을 이용하여 인삼을 재배하였다.

 

첨부파일 201208140106.jpg

비밀번호
수정

비밀번호 입력후 수정 혹은 삭제해주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수정

이름

비밀번호

내용

/ byte

수정 취소
비밀번호
확인 취소
댓글 입력

이름

비밀번호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내용

/ byte

평점

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