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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식을 전하는 인삼상인

작성자 금산인삼도매센터 영농조합(ip:)

작성일 2012-07-19

조회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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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896~1900년까지 세입 에산 기준으로 볼때 당시 정부 세입은 논밭에

부과하는 지세 ,가옥에 부과하는 호세, 그리고 괸세, 금광세 ,인삼세가 전부였다. 그만큼 인삼은

국가의 큰 재원이었고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변변한 공산품이 없던 시절, 인삼은 한국의 효자

상품이었다.

 

1900년대 새계 각국을 누비며 인삼을 판매한 한국의 인삼 무역상들은 당시 해외로 향하는 창이자

외국소식을 국내로 들여오는 창구 역활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의 중국인들을 상대로 인삼을 판매하던 인삼상인 박영순은 인삼 행상으로

멕시코까지 흘러갔다가 조선인들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에 이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박영순의 눈에 비친 동포들의 생활은 '농장 주인의 개만도 못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

이었다. 박영순은 1905년 11월17일 이 사연을 눈물젖은 편지로 하와이에 있던 북미 한인공립협회에

알렸고, 이 내용이 <대한매일 신보>에 실려 조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했다.

이것이 '에네껜'으로 알려진 멕시코 농장에서 참담한 타국살이를 했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옹이<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처음 접한 것도

인삼 무역상을 통해서였다. 손기정은 올림픽이 끝난 후 배를 타고 돌아오던 중 싱가포르에서 조선인

인삼 장수가 귀뜸을 해서 알았다고 한다. 손 옹은 생전<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장기 말소 사건

이야기를 배를 타고 돌아오던 중 싱가포르에서 처음 들었다. 조선인 인삼장수가 나에게 귀뜸해 준것이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거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인삼 무역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 나가 견문을 넓혔다고 한다.

1949년 통역원으로서 아버지르 따라 홍콩으로 갔고 해외에서 공부를 계속해 그의 천재적인 영감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같이 해외를 누비던 인삼 상인들은 한국 사화의 중요한 메신저이자 선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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